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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5일 토요일

김정은이 무서워 하는 것

입력 : 2017.11.25 23:21

국제사회 이슈로 떠오른 북한 인권

옛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인 굴락(Gulag)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1973년 ‘수용소 군도’라는 소설을 펴내면서 국제사회에 실체가 드러났다. 

솔제니친은 이 작품에서 소련 전역에 산재해 있던 수용소들을 군도(群島)에 비유하면서 수백만 명이 강제노역으로 숨져가는 굴락의 참혹한 실태를 폭로했다. 솔제니친은 포병 대위로 근무하다 편지에서 스탈린을 비판한 내용이 문제가 돼 체포당한 뒤 굴락에서 무려 8년간(1945~1953) 강제노동을 해야만 했다. 굴락은 원래 소련에서 강제노동 수용소를 담당하던 정부기관이었다.

미국 언론인으로 퓰리처상 수상자인앤 애플바움은 저서 ‘굴락의 역사’에서 스탈린 시대 소련 전역에 설치된 470여 개의 굴락에 1800만여명이 수용돼 강제노동을 해야만 했고 이 과정에서 최소 450만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공산주의의 적’으로 몰려 굴락에 수용된 사람들은 ‘기생충’ ‘독초’ 등으로 낙인찍힌 채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아야만 했다. 굴락에 수용된 사람은 범죄자들을 비롯해 반체제 활동을 해온 정치범들이었다. 굴락은 스탈린 사후 해체돼 1960년대부터 존재하지 않게 됐다.

소련의 굴락보다 수감자들을 더욱 잔인하고 악독하게 다루는 곳이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이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는 15만~20만명이 감금돼 있으며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 미국 비정부기구인 북한 인권위원회(HRNK)가 발간한 ‘숨겨진 굴락(Hidden Gulag)’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수감자들은 영양실조로 죽기 전까지 12~15시간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옷은 한 벌만 주어지고 비누, 양말, 속옷, 휴지는 제공되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으로 탈출했다 체포된 임신부들은 강제로 낙태시키고 유아를 살해한다고 한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주로 북부 산악지대에 위치하고 전기 철조망에 둘러싸여 있어 탈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구나 고문, 처형, 영양실조 등으로 사망자들이 속출해 말 그대로 ‘인간 쓰레기장’이라는 것이다.

HRNK는 또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Cradle to the Grave)’라는 보고서에서 수많은 죄 없는 북한 주민들이 정치범수용소에서 평생 과도한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식량과 치료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해 결국 목숨을 잃은 뒤 묘비 없는 무덤에 묻히는 처지가 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북한이 정권의 안전을 위해 죄 없는 주민들을 정치범수용소로 보내고 있다면서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 등에 대해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국무부도 지난 8월 북한의 6개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보고서에서 수감자들은 ‘걸어다니는 해골(walking skeletons)’ ‘난쟁이(dwarfs)’ ‘불구자(cripples)’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수용소마다 영양실조로 매년 1500~2000명이 사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레그 스칼라튜 HRNK 사무총장은 “북한 정권은 그동안 정치범수용소에서 비인간적·반인륜 범죄를 서슴없이 저질러왔다”고 지적했다. 북한 정권은 지금까지 정치범수용소의 존재를 인정한 적이 없다.

왜 트럼프는 인권 문제 들고나왔나?

북한 정권은 국제사회의 인권 탄압과 유린에 대한 비판을 아랑곳하지 않고 최근 들어 노동교화소를 대거 만들어 수감자들을 학대하고 있다. 데이비드 호크 HRNK 선임고문은 지난 10월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북한 노동교화소를 촬영한 위성사진 20장을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양강도를 제외한 북한 전역 도(道) 단위 기준 최소 한 개 이상의 교화소가 설립돼 있으며, 수감자는 일반 범죄자뿐만 아니라 정치범도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노동교화소 입구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벽 위엔 철조망 울타리가 쳐져 있다. 폐쇄구역 내부엔 수감자를 통솔하는 감시탑, 기숙사동, 작업장이 포착됐고 일부 교화소 인근에는 광산도 있다. 노동교화소들은 인민보안성(옛 사회안전부)이 관리하고 있으며 주로 도시 외곽 또는 산악 지역에 복합시설 형태로 세워졌다. 호크 고문은 “북한 노동교화소의 위생상태는 끔찍하고 식량 배급은 부족해 수감자들이 영양실조와 관련된 병으로 높은 사망률을 보이고 있다”면서 “잔인하고 혹독한 노동과 극도로 부실한 영양상태, 약품 부족 등으로 많은 수감자가 끔찍하게 죽는다”고 폭로했다. 호크 선임고문은 “김정은 정권이 노동교화소를 북한 주민들을 영원히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해왔다는 비판을 들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오죽하면 한국 방문에서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북한의 무자비한 인권탄압을 신랄하게 비난했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월 7일 한국 국회에서 연설을 통해 북한을 ‘감옥국가(prison state)’로, 김정은을 ‘잔혹한 독재자’로 각각 규정하면서 북한의 열악한 인권 실상을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규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부패한 지도자들이 압제, 파시즘, 탄압의 기치 아래 자국민을 감옥에 감금하고 있다”면서 “10만명으로 추정되는 북한 주민들이 수용소에서 강제노역과 고문, 기아, 강간과 살인을 견디며 고통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잔인한 독재정권은 국가에 대한 충성이란 제멋대로의 기준으로 주민을 평가하고 점수 매기고 계급을 나눈다”면서 “북한은 당신(김정은)의 할아버지(김일성)가 그리던 낙원이 아니라 그 누구도 가서는 안 되는 지옥”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인권 탄압에 대한 비판은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부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인권 문제를 분명하게 거론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북한 정권은 반인도 범죄에 해당하는 인권 탄압을 지금도 계속 자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그동안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 인권 문제를 크게 부각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고도화하자 미국은 김정은을 북한 인권 탄압의 책임자로 지목하는 등 과거와는 달리 인권 문제를 이슈화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과 제재가 통하지 않을 경우 김정은 이 가장 두려워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데이비드 맥스웰 조지타운대학 전략연구센터(CSS) 부소장은 “북한 인권 문제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김정은 정권에 타격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는 지난 9월 11일 유엔 안보리에서 김정은을 사실상 ‘전범(戰犯)’으로 규정해 자산동결을 비롯한 제재 조치를 취하려고 시도했었다. 

당시 중국과 러시아의 강력한 반발로 김정은을 제재하는 것이 무산됐었다. 

유엔 안보리는 대신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한 제재안을 만장일치로 통과 시켰다. 트럼프 정부가 인권을 무기로 김정은을 본격적으로 압박하지는 않고 있지만 국제인권단체들은 반인도적 범죄에 책임을 물어 국제형사재판소(ICC)가 기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해왔다. ICC는 집단살해,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는 상설 국제법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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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15호 요덕 정치범수용소 사진.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보위부 경비대 자택 및 본부 위성사진, 완전통제구역 위성사진, 요덕수용소 정문과 위성사진. photo 엔케이워치

김정은을 ICC에 회부하려면

김정은을 ICC에 회부하려면 유엔 안보리가 만장일치로 결의를 통과시켜야 한다.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할 경우 김정은을 제소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북한은 ICC 회원국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직 국가원수라고 하더라도 면책은 없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신(新)유고연방 대통령은 2001년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에서 반인도적 범죄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발칸반도의 도살자’라는 말을 들어온 밀로셰비치에 대한 재판은 현직 국가원수가 임기 도중 국제사법기구에 기소된 첫 번째 사례다. 밀로셰비치가 재판 중이던 2006년 사망하는 바람에 단죄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국제법적으로 특정 국가의 국가원수도 처벌될 수 있다는 사례가 됐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ICC 제소 추진은 김정은을 최대로 압박하는 방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인권이 인류의 보편적 문제라는 점을 고려할 때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 문제를 계속 부각시킬 경우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명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유엔이 개념을 규정한 ‘국민보호책임(R2P·Responsibility toProtect)’에 따라 국제사회가 북한에 무력 개입하는 것이다. R2P는 특정국가가 반인도적 범죄, 집단살해, 인종청소 등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할 경우 유엔이 나서야 한다는 원칙이며 2005년 유엔 정상회의 결의, 2006년 유엔 안보리의 재확인을 거쳐 국제규범으로 확립됐다.

실제로 유엔 안보리는 2011년 리비아 사태 때 무아마르 카다피의 학살로부터 리비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R2P를 처음 적용했다. 유엔 안보리는 2011년 3월 17일 채택한 결의 1973호에서 ‘카다피의 학살행위로부터 리비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필요한 수단을 동원한다’면서 군사개입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미국 등 나토는 카다피의 정부군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에 나섰다. 결국 카다피는 10월 20일 자신의 고향인수르트에서 나토의 지원을 받은 리비아 반군에 붙잡혀 처형됐다. 42년간 철권을 휘둘러온 독재자가 국제사회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북한처럼 자국민을 정치범수용소나 노동교화소에 수감시켜 강제노동과 고문 등으로 숨지게 하거나 지속적인 기아사태로 몰아넣는 감옥국가의 통치자를 처벌하는 것은 인도주의적 원칙에 입각한 국제사회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에서 지적했듯이 북한과 김정은은 R2P의 충분한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유엔 공식기구인 북한 인권조사위원회(COI)는 2014년 2월 채택한 보고서에서 “북한에서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심각한 반인도적 범죄가 자행돼왔다”면서 “국제사회는 R2P에 따라 인권침해 책임자 처벌 등 인권 개선을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OI는 유엔 인권이사회(UNHRC)가 북한의 인권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2013년 3월 21일 만장일치로 설립을 결의한 이래 1년간에 걸쳐 9개 분야를 조사했었다. 

유엔 총회에서 인권 문제를 담당하는 제3 위원회는 2014년 11월 18일 COI의 보고서를 내용으로 하는 북한 인권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111, 반대 19, 기권 55로 통과시켰다. 제69차 유엔총회도 같은 해 12월 18일 제3위원회 결의안을 찬성 116표, 반대 20표, 기권 53표로 처리했다.

12월 유엔 총회서 결의안 통과되나 제3 위원회는 지난 11월 14일 북한 인권결의안을 전원동의(컨센서스)로 채택했다. 2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북한 인권결의안에 반대하거나 기권하는 국가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그만큼 북한 정권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공분(公憤)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볼 수 있다. 

로베르타 코헨 전 미국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는 “이번 결의안이 표결 없이 합의 처리된 점은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심지어 중국과 러시아, 쿠바 등 북한과 가까운 나라들조차 북한의 인권유린 사실은 부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R2P도 이번 결의안 내용에 포함돼 있다.

12월 열리는 제72차 유엔 총회도 이번 제3위원회 결의안을 통과시킬 것이 분명하다. 미국 국무부는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은 북한 당국자들에 보내는 강력한 경고라고 밝혔다. 캐티나 애덤스 국무부 동아태 담당 대변인은 이렇게 강조했다.

“북한에서 벌어지는 있는 초법적 살인, 강제노동, 고문, 자의적으로 이뤄지는 장기 구금, 강간, 강제낙태, 성적 폭력 등의 인권유린을 국제사회가 묵과해서는 안 된다.”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은 “북한 인권유린의 책임규명과 처벌은 북한 인권 보호 활동의 필수적 요소”라고 밝혔다.

비록 유엔 총회의 결의안이 구속력은 없지만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유린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하고 책임자 처벌을 강조했다는 것은 김정은에 커다란 압박이 될 것이 분명하다. 유엔 193개 회원국들의 결의를 무시한다는 것은 북한정권으로서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북한 인권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내들 경우 김정은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북한 정권이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강력하게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노동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미치광이 대통령이 저지른 만고 죄악을 단죄한다”면서 “트럼프의 악담을 체제 전복을 위한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비난했다. 노동신문은 또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최고 존엄 중상모독, 북한 사회주의제도 비방, 인민 생활 먹칠, 대북 압살 등의 ‘죄악’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박테리아’ ‘바퀴새끼’ 등으로 지칭했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에 대한 예방적 차원의 선제타격이 어려울 경우 R2P에 따른 군사 개입을 도모할 수도 있다. 김정은은 이미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했고 이복형인 김정남을 화학무기로 암살해 국제사회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김정은의 인권 탄압이 극에 달할 경우 국제사회는 더 이상 인내하지는 않을 것이다. 김정은이 핵무기만이 자신의 안전보장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24/20171124017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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