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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10일 목요일

여름에도 녹지 않는 얼음 동굴: Ice Caves that never melt

The Ice Caves That Never Melt, Even In Summer

In the mountains of the Shanxi province in China, is the country’s biggest ice cave—an 85-meter deep bowling pin shaped subterranean structure set into the side of the mountain. Its walls and floors are coated with thick layers of ice, while large icicles and stalactites stretch from the ceiling to floor. The Ningwu Cave has the unique ability to stay frozen throughout summer even when the outside temperature climbs into the high teens.
Across continental Europe, Central Asia, and North America are many such ice caves where winter lasts all round the year. The majority of these ice caves are located in cooler regions, such as Alaska, Iceland and Russia, where the year-long low temperature helps keep the caves naturally cool and frozen. However, ice caves also exist in warmer clim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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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ingwu Ice Cave in China. Photo credit: Zhou Junxiang/Image China
Most of these caves are what is known as “cold traps”. These caves have conveniently located chimneys and exits that allow cold air to enter during the winter, but not the warm air in summer. In winter, the cold dense air settles into the cave, displacing any warmer air which rises and exits the cave. In summer, the cold cave air remains in place as the relatively warm surface air is lighter and cannot enter.
The ice inside the cave also acts as a buffer that helps stabilizes the temperature inside the cave. Any warm air entering the cave is immediately cooled by the ice before it can cause any significant warming of the cave’s inside. Sure, it melts some ice, but the ambient temperature inside the cave stays pretty much constant. The reverse is also true: in winter, when very cold air cascades in, any liquid water in the cave freezes, releasing heat and stopping the cave’s temperature from plummeting too low.
For ice caves to form there must also be sufficient quantities of water available over the right period of time. In winter the climate must be such that the mountains are sufficiently covered in snow, and in summer the temperature should be high enough to cause the snow to melt but without significant warming of the air which streams into the caves. There needs to be a delicate balance between all these factors for an ice cave to form and maintain it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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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rgest ice cave in the world is Eisriesenwelt, located in Werfen, Austria, about 40 km south of Salzburg. The cave stretches for more than 42 kilometers. Photo credit: Michael & Sophia/Flickr
The Decorah Ice Cave in Iowa, the US, is one of the largest caverns containing ice in the American Midwest. The cave remains relatively ice free during fall and early winter. During this period, chilly winter air enters the cave and lowers the temperature of the rock walls. When snow starts to melt in spring, the melt water seeps into the cave and freezes upon contact with the still-cold walls, reaching maximum thickness of several inches in May-June. Ice often remains inside the cave until late August, while outside temperature breaks into the high thirties (high nineties for Americ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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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imilar phenomenon is seen at Coudersport Ice Mine in Pennsylvania. It’s a small pit, where ice forms only during the summer months, and melts away in winter. Photo credit: rivercouple75/Tripadvi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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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oming Ice Chasm in the Canadian Rockies in Alberta is known for its incredible acoustics. It is said that as rocks tumble down and crash to the cave floor, 140 meters below, it causes booming echoes. The cave was discovered only in 2005 on Google Earth. Photo credit: Francois-Xavier De Ruyd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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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ingwu Ice Cave in China. Photo credit: Zhou Junxiang/Image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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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ingwu Ice Cave in China. Photo credit: Zhou Junxiang/Image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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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ingwu Ice Cave in China. Photo credit: Zhou Junxiang/Image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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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ingwu Ice Cave in China. Photo credit: Zhou Junxiang/Image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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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ingwu Ice Cave in China. Photo credit: Zhou Junxiang/Image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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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ingwu Ice Cave in China. Photo credit: Zhou Junxiang/Image China

지구의 좌표: 위도(緯度)와 경도(經度): Latitude and Longitude


[경도와 표준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 그리니치천문대에 기준선 그었어요
우리나라 1961년 동경 135도 확정… 北, 127.5도로 옮겼다 최근 원위치

우리나라와 북한의 시간이 같아졌어요. 과거에는 서울 시각이 오후 1시이면 평양 시각은 오후 12시 30분으로 30분씩 차이가 났지만, 이제는 서울과 평양 시계가 똑같은 오후 1시를 가리키게 됐답니다.

사실 서울과 평양은 지도상으로 거의 일직선상에 있어요. 이런 경우 보통 표준시 차이가 없는데, 왜 서울과 평양은 30분이란 차이가 생긴 것일까요?

◇선원의 생사가 걸린 '경도' 측정
중세 이후 사람들은 지구 모양이 '평평한 것'이 아니라 '둥근 구(球)'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여행이나 무역을 할 때 험난한 육로를 피해 바닷길을 이용하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큰 배를 타고 멀리 나아가는 일이 잦아지자 배가 길을 잃고 침몰하는 사고도 자주 발생했어요.

그래서 등장한 것이 지구 위에 위도(緯度)와 경도(經度)를 그린 지도예요. 위도는 적도를 기준으로 특정 지점이 남북(南北)으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나타내는 '가로선'이에요. 적도부터 극지방까지 15도씩 0~90°(도)로 구분하는데, 적도 북쪽을 '북위'라 하고 남쪽을 '남위'라고 해요.

반면 경도는 영국 그리니치천문대에 그어진 '본초자오선(本初子午線)'을 중심으로 동서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나타낸 '세로선'이에요. 지구 둘레를 360°로 나눈 뒤 본초자오선 동쪽 180°까지 '동경'이라 하고 서쪽 180°까지 '서경'이라 불러요.

이렇게 위도와 경도를 이용하면 지구상 어느 지점도 쉽게 수치로 나타낼 수 있답니다. 어떤 장소든 위선(위도 선)과 경선(경도 선)이 만나서 생긴 네모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면 평양은 위도 39°, 동경 125°에 있고 서울은 위도 37°, 동경 126°쯤에 있어요.

◇위도는 기후, 경도는 표준시 결정
위도와 경도는 각각 기후와 표준시에 큰 영향을 미쳐요. 먼저 위도는 그 지역이 열대 기후인지, 온대 기후인지, 한대 기후인지를 결정하는데요. 이는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위도에 따라 지표면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의 양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즉 태양이 수직으로 내리쬐는 저위도 지역(남·북위 0~30° 지역)은 대체로 1년 내내 더운 열대 기후이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위도 지역(남·북위 30~60° 지역)은 온화한 온대 기후예요. 하지만 태양 빛이 넓은 지역에 걸쳐 비스듬하게 비추는 고위도 지역(남·북위 60~90°)은 1년 내내 추운 한대 기후이지요.
위도와 경도 설명 그래픽
 그래픽=안병현
경도는 각 나라에서 표준시(한 나라·지역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시각)를 결정하는 기준이 돼요. 지구는 하루에 한 바퀴씩 스스로 회전(자전)하기 때문에 각 나라마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달라요. 그래서 사람들은 지구를 24개 세로선으로 나누고 시간을 정했답니다. 경선 하나마다 한 시간씩 차이가 나는데, 동쪽으로 가면 한 시간씩 빨라지고 서쪽으로 가면 한 시간씩 늦어지는 거예요.

재밌는 건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적도에서 극지방으로 갈수록 경도 15도에 해당하는 거리가 작아진다는 거예요. 경도 1도는 세계 어디에서든 4분(1시간÷15도) 정도 시차를 나타내지만, 거리로 환산하면 적도에선 약 111.3㎞이고 북극이나 남극에서는 0㎞에 해당하지요.

◇그리니치천문대가 경도 기준 되다
위도는 지구 자전축과 수직을 이루는 적도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지구상 동서(東西) 위치인 경도를 구하는 일은 무척 어려웠지요. 위도처럼 자연적인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서로 다른 장소의 시간을 알아낸 뒤 그 차이를 통해 경도를 구하는 방식을 사용했는데요. 오늘날에는 두 개의 시계로 쉽게 해결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흔들리는 배 위에서 진자(振子)시계로 정확한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답니다. 배 위에서 진자의 진동 속도가 달라지기 십상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던 1735년 시골의 이름 없는 목수였던 존 해리슨이 해상용 시계인 'H1(크로노미터)'을 제작합니다. 이 시계는 무엇보다 스프링(용수철)을 써서 흔들림의 영향을 덜 받는 것이 특징이었어요. H1은 영국 포츠머스항에서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가는 영국 군함 센추리언호에 실려 그 정확성을 검증받았고, 이후 지속적인 개선 작업을 통해 오차를 크게 줄여나갔지요 .

1800년대 경도 문제는 국가 간 분쟁으로 옮아갔습니다. 많은 나라가 경도와 위도를 사용한 지도를 제작하기 시작했지만 각기 자기 나라를 기준으로 경도를 표시했기 때문이지요. 이에 1884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경도대회에서 영국의 그리니치천문대를 지나는 경도를 '본초자오선(기준 경도)'으로 삼기로 결정했어요. 당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대영제국이 막강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각국 대표들을 설득한 결과였지요. 이에 따라 전 세계 각국이 자기 나라에서 가장 근접한 경도를 기준으로 1시간 단위(15°)로 표준시를 채택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로 자리 잡았어요.

우리나라 표준시 기준의 경우 대한제국 말부터 동경 127.5도와 135도를 오가다 1961년 일본과 같은 '동경 135도'로 최종 확정했어요. 이에 따라 서울 표준시도 그리니치 표준시보다 9시간(135÷15) 빠른 시각으로 정해졌지요. 북한도 오랫동안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표준시를 사용해 왔지만, 2015년 일제 잔재를 청산한다는 이유로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삼으면서 시각이 달라진 거예요. 이번에 남북이 함께 시간을 맞춘 만큼 앞으로 여러 가지 다른 점들을 좁혀 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라요.


서금영·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박세미 기자

2018년 5월 3일 목요일

죤 매캐인 의원: "세상은 지킬 가치 있는 곳"

말기암 판정받은 '美보수의 상징' 매케인, 미국과 세상에 건넨 苦言
"트럼프는 리얼리티 쇼하듯 자신의 터프함 보이는 것을 어떤 가치보다 중요하게 여겨"

"오늘날 정치의 문제는 겸손의 결핍이다. 겸손은 누구나 갖고 있는 '자기 이해'일 뿐 대단한 게 아니다. 그 겸손이 (대화와 타협을 가능케 해) 더 생산적인 정치를 만든다. 그것이 사라지면 우리 사회는 갈가리 찢기고 말 것이다."

어른거리는 죽음의 그림자를 마주한 미국의 보수 정치인이 생애 마지막이 될 회고록에서 호소한 것은 겸손(humility)이었다. 말기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존 매케인(81) 공화당 연방 상원의원이 병석에서 집필한 회고록 '쉼 없는 파도(The Restless Wave)'가 오는 22일 출간을 앞두고 요약본이 1일(현지 시각) 공개됐다.

이 책은 산전수전 겪은 노(老) 정치인이 미국과 세계에 건네는 고언(苦言)이다. 매케인은 "나는 5년 더 살 수도, 이 책이 나오기 전 떠날 수도 있다"면서 "세상은 좋은 곳이며 싸워 지킬 가치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떠나기가 싫다. 불평하진 않겠다. 인생은 여행과도 같았다"고 했다.
미국의 대표적 보수 정치인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이 공화당 대선 후보로 출마했던 2008년 10월 오하이오주의 오터바인 대학교에서 연설하는 모습. 말기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그는 오는 22일 출간할 회고록 ‘쉼 없는 파도’에서 “오늘날 정치에는 겸손이 부족하다”고 일갈했다.
미국의 대표적 보수 정치인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이 공화당 대선 후보로 출마했던 2008년 10월 오하이오주의 오터바인 대학교에서 연설하는 모습. 말기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그는 오는 22일 출간할 회고록 ‘쉼 없는 파도’에서 “오늘날 정치에는 겸손이 부족하다”고 일갈했다. /AP 연합뉴스
그는 "나는 (6선 의원으로서)여섯 명의 대통령과 일하면서 그들 모두에 반대하고 싸워봤다"면서 "그러나 정치인으로서, 평범한 미국인으로서 서로가 가져야 할 존중을 약화시켜선 안 된다"고 했다. 또 "정치 성향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공화당원이든 민주당원이든 좋은 부모, 충성스러운 미국인, 고결한 인간일 수 있다"고 했다.

매케인은 미국 정치가 '이념의 게토(ghetto·집단 거주지)'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 은둔하는 양극화가 심하다고 우려했다. "자신만의 뉴스 소스를 갖고, 자신에게 동의하는 사람들과만 생각을 나누며, 그렇지 않으면 상대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는 '팩트(fact)'만을 취사선택하고 그에 배치되는 어떤 경험적 증거도 '가짜(fake)'로 치부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터프하게 보이는 것, 또는 리얼리티 쇼처럼 터프함을 모방하는 행위를 다른 어떤 가치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극우·극좌의 정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목소리를 내라"면서 "선거에서 누가 '워싱턴에 백마를 타고 가서 세금을 털어가는 깡패들을 혼내주고, 그들과는 함께 일하지도 타협하지도 않겠다'고 하면, 그 후보만 안 뽑으면 된다"고 했다. 뭐든 다 해줄 듯이 터무니없는 공약을 내걸고, 상대방 정파는 무조건 비난하는 후보는 뽑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다.

이런 정치 비평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매케인 의원의 말이라면 무게가 다르다. 그의 인생 자체가 '미국의 살아 있는 양심'이자 '정의로운 보수주의'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해군 출신인 매케인은 29세 때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공산당에 포로로 붙잡혀 5년 반 동안 고문을 당했다. 한국전 때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던 해군 제독 아버지(잭 매케인)가 미 태평양 사령관으로 부임하자, 부담을 느낀 베트콩이 그에게 조기 석방을 제안했다. 그러나 매케인은 "먼저 들어온 사람이 먼저 나간다"는 군 수칙을 내세워 동료부터 풀려나게 했다.

이때의 경험이 매케인의 이후 정치 인생을 좌우하게 된다. 애리조나주 연방 하원의원을 거쳐 내리 6선 상원의원을 하는 동안 그는 자신과 정파의 이익보다 인권과 정의,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웠다. 시리아 내전이 한창이던 2013년 수행원도 없이 현지에 들어가 실태를 조사한 뒤, 오바마 정부에 시리아 반군 지원을 촉구했다. 최근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 지명자의 알카에다 포로 물고문 전력이 논란이 되자 공화당 소속임에도 인준을 반대했다.

매케인은 회고록에서 "이번이 나의 마지막 임기다. 이젠 (정치적) 결과에 신경 쓰지 않고 속내를 말할 수 있다"고 했지만, 평생 인기를 따지지 않고 원칙을 지켰다. 그는 2008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 민주당 오바마 후보를 "아랍인"이라고 욕하는 공화당의 백인 지지자에게 "그건 아니죠"라고 훈계했다. 같은 진영에 쓴소리를 서슴지 않는 그를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 같은 데서 붙잡히기나 하는 주제에"라고 조롱했다. 뉴욕타임스는 "어쩌면 매케인의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큰 봉사는 베트남 포로로 고생할 때가 아니라, 상원의원으로서 보수 진영에 몸담고 있는 지금일 수도 있다"고 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누구]
1936년 파나마생
1954년 해군 제독인 조부·부친을 따라 해군사관학교 진학
1965년 베트남전 참전했다 5년 반 포로 생활
1982년~ 애리조나주에서 연방 하원의원 재선
1986년~ 연방 상원의원 6선, 상원 군사위원장
2005년 포로 고문을 금지한 '매케인 정치범 수정법' 통과
2000년 공화당 대선 경선, 조지 W 부시에게 패배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 버락 오바마에게 패배
2017년 악성 뇌종양 발병, 투병 중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03/2018050300226.html

2018년 4월 5일 목요일

절묘한 포착 사진들: 20 Perfectly-Timed Photos

We live in a world of wonder and miracles. And one of the ways we are able to witness the incredible beauty of the planet is through a photographer's lens. While sometimes, photo editing may be used to make a picture brighter, a true masterpiece can only be captured at the perfect moment. Take a look at these perfectly-timed photos that will undoubtedly take your breath away. 
 
 
1. What a shot! Frog swallowing a sn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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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is cloud needed an adjus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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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Have you ever seen a turtle stretch out its n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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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45 water skiers pulled by a single b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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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Stunning! A seafoam splash captured at a thousandth of a second, covering a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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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A red dust storm roars over the ocean near the western Australian co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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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Flowers captured in water dro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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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The aftermath of a 2010 toxic waste spill in Western Hun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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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Sutro Tower in San Francisco looks just like a floating ship passing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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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These water droplets generated multiple plane refl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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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A sea of clou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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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The Lake District in Cumbria, North West Eng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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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A perfect reflection! Harringworth Viaduct in Rutland reflected in flood water caused by heavy snow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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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The stunning levels of sun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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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The floating b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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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The Northern Lights, Nor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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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A single photo, showing contra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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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A bird torn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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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Methane bubbles in Lake Minnewanka, Banff National Park, Can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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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A tree fa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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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1일 수요일

건강하던 사람 쓰러뜨리는 '심장마비', 왜 생길까?

입력 : 2018.03.08 11:03


쓰러진 남성
젊고 건강한 사람을 한순간에 쓰러뜨리는 심장마비. 심장마비는 왜 생기는걸까? /사진-헬스조선DB
최근 심장마비로 운명을 달리한 이들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심장마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젊고 건강하던 사람을 쓰러뜨리는 심장마비가 왜 생기는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갑작스러운 사망을 유발하는 심장마비의 주요 원인은 심근경색·협심증·부정맥 등이다.
심근경색은 심장의 동맥 혈관이 혈전 때문에 막혀 심장에 혈액 공급이 안 되는 상태이다. 협심증은 동맥경화증 등의 질환으로 일시적으로 심장에 혈액 공급이 부족해져 흉통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심근경색으로 혈관이 막히면 극심한 가슴 통증이 30분 이상 지속되고 식은땀·구토·졸도 등의 증상이 동반된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은 심근경색을 유발해 돌연사로 이어지게 한다. 부정맥이 심근경색으로 이어질 경우, 부정맥으로 혈압이 내려가 뇌 손상까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심근경색 증상이 나타나면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가야 한다.
또한 젊은층 심장마비는 유전성 심장질환이 원인인 경우도 적지 않다. 고대안암병원 순환기내과 최종일 교수는 국내 심장 돌연사 원인의 약 35%가 유전성 심장질환이라는 조사 결과를 최근 대한심장학회에서 발표했다. 유전적으로 심장 근육이 두껍거나 부정맥이 있는 사람들이 해당된다. 특히 유전성 부정맥으로 인한 돌연사는 대부분 40세 이전에 생긴다.
이처럼 젊은층에서 발생하는 심장마비를 막기 위해서는 동맥경화 자체를 예방하는 게 우선이다. 

평소 기름진 음식 섭취를 줄이고 규칙적인 운동을 해야 한다.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질환이 있으면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스트레스는 최대한 줄여야 하고 금연은 필수다. 

유전성 심장질환으로 인한 돌연사를 예방하려면 가족 중 50대 이전 심장마비를 경험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가족력이 있으면 40세가 되기 전 심장 초음파나 심전도 검사를 받는 게 안전하다. 

또한 심폐소생술은 심장마비 환자의 생존율을 3배 이상으로 높인다. 급성 심정지 환자가 생기면 주변인은 먼저 119에 신고하고 구급대원이 도착할 때까지 심폐소생술을 해야 한다. 10분이 지나면 심폐소생술을 해도 의식이 잘 돌아오지 않는다. 환자의 양 젖꼭지를 기준으로 중간 부위를 5㎝ 깊이로 분당 100~120회 압박하면 된다.

출처 :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08/2018030801229.html

2018년 3월 19일 월요일

탈북 문인들의 현황

입력 : 2018.02.04 06:36

2005년 탈북해 한국에 들어온 김정애(51)씨는 지금껏 여러 직장에서 가명을 써왔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신변 위협 때문이었다. 그가 이끄는 탈북문인단체 '국제펜클럽 망명북한작가센터'(이하 '망명펜센터')에 소속된 회원 작가들도 대개 필명을 사용했다. 회원들의 나이, 고향 등 신상정보도 감췄다. 망명펜센터 측의 허락 없이는 외부에서 회원들과 개별적으로 접촉하거나 주소지·연락처를 받기도 어려웠다. 기자 역시 망명펜센터의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김씨를 통해서야 탈북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왼쪽부터) 국제펜클럽 망명북한작가센터 김정애 이사장, 웹툰작가 최성국씨. /신승민
"사실상 저희도 직간접적으로 위협을 느끼죠. 저를 비롯해 탈북 작가들이 필명을 써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북한에는 연좌제가 있어서 가족들을 보호해야 하니까요. 망명펜센터가 설립 초기 국제펜클럽에 가입한다고 하니까 북한의 '우리민족끼리'에서 '조국을 탈출한 쓰레기들 용서치 않겠다'고 했어요. 최근에도 대놓고 센터 회원들을 거명하진 않아도 '탈북자들이 국제무대에 나가서 이러쿵저러쿵한다'고 북에서 주시하고 있어요."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김씨는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탈북했다. 북한에서 5년간 작가양성 과정을 수료했지만 정식 작가로 활동하는 건 꿈도 못 꿨다.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작품을 발표해도 수령 찬양이나 체제 미화가 아니면 북에선 통과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탈북 후 2014년 한국소설가협회에 '밥'이라는 단편소설이 당선되면서 1호 등단 탈북 작가가 됐다. 김씨의 소설 '밥'은 지독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딸과 함께 탈북한 주인공이 북에 남은 남편에게 탈북을 권유하는 내용을 그린 작품이다. 김씨는 "우리 탈북 문인들이 북한의 실상을 다루는 게 통일의 과녁을 명중할 수 있는 길"이라고 했다.


칼 꽂힌 쥐와 피 묻은 도끼
탈북 작가로 활동한다는 건 목숨을 거는 일이다. 당장의 현실에서 가시적인 위험은 없다고 해도, 이미 그들에게는 탈북 과정 자체가 자유를 위해 사선(死線)을 넘은 탈주였다. 게다가 남한에 와서는 북한 체제의 실상과 인권 유린의 참상을 고발하는 작품을 쓰는 상황이다. 북한의 위협에다 작품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반대파들의 질시까지 받아내야 한다. 어찌 불안감과 두려움이 없을까.

'얼굴 없는 탈북 화가' 선무(線無)는 조선일보 1월 13일자 인터뷰에서 "남한에 들어와 5년 동안은 매일 북한에 가 있는 꿈을 꿨다"며 "밤마다 김일성·김정일에게 쫓긴다. 눈 뜨면 한숨이 나온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왕성한 대외활동으로 이름을 떨칠수록 북한의 '요시찰' 대상으로 찍혀 공격을 받는다. 김씨의 증언이다. "대내외적으로 유명해진 작가들은 발신자 미상의 협박 전화를 받기도 했다. 대북 방송국을 운영하는 본 센터의 모 시인은 과거 피 묻은 도끼, 죽은 쥐에다 칼을 꽂아서 보낸 '협박용 우편물'을 받았다."

실제 모 화가는 기자와의 만남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정중히 고사했고, 어렵게 구한 탈북 작가의 연락처가 착신금지된 경우도 있었다. 기자가 접촉을 시도한 한 탈북 시인의 경우 현재 신변 문제로 외국에 체류 중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탈북 작가들이 필명을 써가며 펜과 붓을 놓지 않는 이유는 자신들이 직접 경험한 북한의 모순된 현실을 폭로하기 위함이다. 본 센터의 초대 이사장을 지낸 장해성(73)씨는 소설 '두만강'(나남출판·2013)에서 북한 수용소의 인권 유린 실태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구덩이에서 흙을 파내는 일, 등짐으로 날라오는 일, 그리고 그렇게 운반해 온 흙에 썬 볏짚을 섞고 이개고 벽돌을 만드는 일, 어느 것 하나 기계로 하는 것이 없었다. 힘들었다. 부실한 식사로 버티기엔 너무 고되다. 오전에 한 번, 오후 한 번 10분씩 휴식시간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 시간이면 무엇이든 입에 넣을 것을 찾아 헤맸다. 다 마른 것이라 해도 냉이 같은 것은 최고급이었다. 메뚜기, 개구리, 무엇이든 입에 넣을 수 있는 것이면 다 먹었다.'

장씨는 1996년 탈북하기 전까지 북한 조선중앙TV에서 기자와 작가로 20년간 일했다. 당시 북한에서 인기 드라마였던 '천복이와 만길이' 시리즈, 김일성을 찬양한 시나리오 '한 투사의 추억' 등선전용 극본을 썼다.

"최근 북한에서 작가라 하는 사람들이 '반디'처럼 반체제 작품을 한두 권씩 깔고(감추고) 있다고 그래요. 언젠가 북한이 달라지기만 하면 발표를 하겠다면서 말이오. 내가 남한에서 쓴 책들도 북한 주민들에게 가서 널리 읽혔으면 좋겠소."
선무와 마찬가지로 '얼굴 없는 작가'이자 재북(在北) 반체제작가인 반디는 소설 '고발'을 통해 북한의 인권 유린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2014년 첫 출간된 '고발'은 지난해 다산북스에서 다시 펴내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고난의 행군' 시절이던 1980~1990년대 가난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의 생활고를 7편의 단편으로 묘파한 작품집이다. 지난 1월 18일에는 반디의 신작 시집 '붉은 세월'이 출간되기도 했다.


"北 실체 고발작, USB 담아 보내"


일각에서는 반디의 실존에 의문을 품기도 하지만, 기자가 만난 탈북 작가들은 한목소리로 반디의 소설은 '북한 작가가 쓴 글'이 맞다고 증언했다. 직접 북한 생활을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그만한 서사와 묘사가 나오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다만 워낙 미스터리한 인물이기에 연령이나 현역 여부 등에 대해서는 탈북 작가들마다 의견이 달랐다.

재북 작가 반디의 용기 있는 창작이 주목받는 이유는 예술을 대하는 북한의 태도 때문이다. 장씨에 이어 2대 망명펜센터 이사장을 역임한 탈북 작가 이지명(65)씨 말에 따르면 북한에는 김일성·김정일 교시가 담긴 조선노동당 문예이론이 있다고 한다. 북한의 작가라면 취재보다 문예이론을 암기하다시피 공부해야 한다. 당의 교시를 따르는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와의 연계 없이는 작품을 발표·출간하지도 못한다. 정식 작가가 아닌 일반 주민의 창작물도, 심지어 초등학생 일기장도 검열 대상이 됐다. 당연히 지도부 풍자나 체제 비판 작품은 엄두도 못 냈다. 이씨는 "만에 하나 그런 걸 만들어서 공연이라도 한 날이면 구족(九族)을 멸족 당한다"고 했다.

이처럼 자유예술을 통제하는 북한 사회를 떠나 탈북 작가들은 '남한의 반디'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중심에 탈북 작가 장해성·이지명·김정애씨가 이끌어온 망명펜센터가 있다. 2012년 9월 경주에서 열린 제78차 국제펜클럽대회에서 정식 가입된 망명펜센터는 대표적인 탈북문인단체다. 현 단체의 고문을 맡고 있는 이길원 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장이 당시 조직 결성을 주도했다. 지금도 국제한인문학회, 통일문학포럼 등 유관단체들과 교류하며 연간 문학지와 수필집을 출간·번역해 세계에 탈북 문학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망명펜센터는 북한의 실체를 고발한 문학작품을 북한으로 유입시키는 활동도 했다. 김정애 이사장 말에 따르면 가끔씩 북한 고위 간부들이 남한으로 비밀리에 한국 영화와 예능프로그램을 요구한 적도 있다고 했다. KBS 예능프로 '1박2일', 영화 '베테랑' '치외법권' 등을 원했다는 것이었다. 김 이사장의 표현대로 그들도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하니까' 외부, 특히 남한 문물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때마다 망명펜센터 측은 USB에 요청자료와 함께 탈북 작가들의 문학작품을 함께 담아서 들여보냈다고 했다.

망명펜센터 소속 탈북 작가들은 시·소설·수필 같은 본격문학에 더해 대북 방송용 라디오 드라마를 제작해 북한 체제의 실상을 폭로하기도 했다. 김 이사장의 말이다.

"2015년부터 2년 동안 미국 국무부의 지원을 받아서 대북 방송용 라디오 드라마를 약 100편 정도 만들었습니다. 그중 '북쪽에서 온 편지'라는 작품은 현 북한 간부들의 비리를 캐는 내용이었어요. 부정부패 사건을 극화(劇化)해서 대북 라디오 방송으로 내보냈습니다. 반응이 좋았어요. 그 방송을 듣고 탈북한 사람이 와서 '잘 들었다'고 소감을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웹툰'으로 알린 북한 실상과 남한 정착기


(왼쪽부터) 탈북 화가 오성철씨, 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탈북 화가 강춘혁씨. /신승민, 강춘혁
탈북 문인들뿐만 아니라 미술 작가들도 각자 예술적 소신을 지키며 남한에서 활동 중이다. 

그중 최성국(39)씨는 유명한 편에 속한다. 국내 유일의 탈북 웹툰작가이기 때문이다.
최씨는 북한 만화영화촬영소에서 외국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매달 꾸준히 지급되는 급여에 설탕, 식용유, 소고기까지 배급받았다. 실적에 따라 1년마다 냉장고·세탁기·텔레비전 중 한 대를 얻기도 했다. 특별대우를 받았던 셈이었지만 머지않아 충격에 휩싸였다. 현격한 차이의 월급 수준 때문이었다. 최씨가 1달러를 받을 동안 그와 똑같이 일한 동료 외국인 직원들의 월급은 수천달러에 육박했다. 평양 주민이었던 최씨와 달리 외국인들은 본국에서 직접 월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회의감이 들어 그 길로 촬영소를 나온 최씨는 한동안 포토샵 기술을 이용한 사진 작업과 중고 컴퓨터 재조립 판매로 돈을 벌었다. 그러다 우연히 하드디스크에 담긴 한국 영화를 보게 됐고 이를 복사해서 판매했다. 북한 당국의 감시망에 걸려 3번이나 감옥에 갔다. 최씨는 수감생활을 하고 지방에 내려가 강제노역을 하면서 북한 사회의 실상을 알게 됐다.

"'북한은 영원히 잘살 수가 없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죠. 북한은 주민들을 절대로 잘살게 안 합니다. 토끼 가죽 바쳐라, 돼지 길러 바쳐라, 송이버섯 바쳐라, 심지어 똥이랑 파리 잡은 것도 바쳐요. 주민의 90%를 못살게 배고프게 해서 정치에 관심 없고 무조건 충성하도록 만듭니다. 목숨만 살려주고 먹을 거만 주면 끝인 거예요. 나머지 10%는 평양, 선전용 세트장인 거죠."

북한의 진실을 깨달은 최씨는 2010년 자유와 성공의 기회를 찾아 남한으로 왔다. 기자와 방송인을 거쳐 웹툰작가로 변신한 그는 '로동심문' '고발' 등의 작품으로 온라인상에서 인기를 끌었다. 특히 탈북자의 남한 정착기와 북한 주민들의 삶을 그린 '로동심문'은 지난해 포털사이트 연재 당시 평균 2만~3만건의 조회수를 올리며 탈북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는 앞으로도 꾸준히 웹툰 창작을 통해 '남북의 문화공감'을 이끌어가고 싶다고 했다. 그 일환으로 최씨의 지인들은 그의 웹툰을 동영상으로 찍어 북한으로 보낸다고 한다. 최씨의 말이다.

"북한 주민들이 제 만화를 보면 북에서 횡행하는 인민재판도 피해자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요. 자신들의 삶과 북한 정권의 실상에 대해 성찰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대북 제재로 북한 정권의 거품이 다 빠져버렸어요. 배급을 못 주니까 공산주의에 심취된 사람들이 다 죽은 거예요. 그때부터 주민들이 '이대로 안 죽는다' 하고 외국으로 터져나오게 됐어요. 한·미·일·중 물건이 밀수로 다 들어간 겁니다. 그 흐름 못 막습니다. 문화예술의 힘은 총포탄보다도 더 커요. 특히 한국 콘텐츠를 유입시키는 게 효과가 있어요. 같은 민족의 말과 영상이라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니까요."


"기능공 아닌 화가로 '탈북 자화상' 그린다"


(왼쪽부터) 탈북 화가 강춘혁씨의 작품 '알림', 강춘혁씨의 작품 '허상', 소설가 장해성씨가 쓴 '두만강'. /강춘혁, 교보문고
"북한에서의 화가는 그냥 기능공이에요. 남이 땀 뻘뻘 흘릴 때 비 안 맞는 정도의 사람들이죠. 화가의 직업적 위치가 그 수준이었으니 북한에서는 그림 그려서 대학 간다는 생각을 못 했어요. 중국으로 장사를 다니면서 '나만의 삶을 살아보자'는 결심을 하고 탈북하게 됐습니다."

평안남도 남포에서 출생한 탈북 화가 오성철(40)씨는 1994년부터 2002년까지 북한 조선인민경비대 1226군부대 선전선동부 직관원(直觀員)으로 복무했다. 북한의 직관원이란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벽보·그림·도표를 만드는 사람을 뜻한다. 오씨가 복무할 때만 해도 북한에서 프린트 기술은 거의 발전하지 못한 상태였다. 김일성 초상화부터 부대 연혁 도표에 과녁판까지 사람이 손수 쓰고 그려야 했다. 10년 가까이 복무할 동안 총 한 번 쏴 보지 못할 정도로 일손이 바빴다고 했다. 게다가 북한 당국에서 배급하는 공용 물감은 딱딱하고 색이 좋지 못했다. 직관원 개인이 인근 염료공장에 가서 몰래 쌀을 갖다 주고 사제 물감을 사서 그려야 할 정도로 지원이 열악했다.

군 복무를 마친 오씨는 3년간 북한 제염단과대학을 다녔다. 학비와 생계 문제로 중국을 오가며 장사도 했다. 그러던 차에 서른한 살이 되던 때부터 삶에 회의를 느꼈다. 미래를 어떻게 가꿔야 할지 고민을 시작하다가 결국 탈북을 결심했다. 2012년 남한으로 와서 진정한 화가로서의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오씨의 작품들은 직접적인 북한 풍자나 김씨 일가 패러디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자신이 남북한에서 생활하며 깨달은 인생의 화두와 철학을 담았다. 그것은 '먹고산다는 것'의 엄중함, 즉 생존의 문제였다. 북한에서는 공포정치로, 남한에서는 금전 문제로 '먹고살기 힘든' 세상을 숟가락과 빨대를 통해 형상화했다. 오씨는 그림 속 빨대 뗏목을 타고 숟가락으로 노를 저으며 남쪽으로 내려가는 한 사공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했다.

"모든 이념들을 다 파헤쳐 보면 마지막에는 결국 먹고사는 문제, 생존의 문제가 걸려 있어요. 그래서 숟가락은 먹는 도구지만 그 위에 무엇을 올려놓느냐에 따라서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어요. 자신만의 인생 가치관이 중요한 거죠."

과거 한 케이블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김정은과 리설주를 풍자한 랩으로 유명세를 탄 강춘혁(33)씨도 탈북 화가 출신이다. 최근 강씨는 오씨와 합동으로 서울 은평구에 갤러리 '앤츠' 개관을 준비 중이다. 함경북도 온성에서 출생한 강씨는 2001년 남한에 오면서부터 10년간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음식 배달에 공사장 인부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어렵게 번 돈으로 다시 붓을 잡았다. 중·고등학교 과정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2012년 홍익대 회화과에 입학했다. 미대 학비는 출판사에서 동화책과 월간지 삽화를 그려서 마련했다. 2014년 '꽃제비 날다'라는 제목의 개인전을 열어 정식 화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북한 주민의 고단한 삶을 그린 '회상' 시리즈, 북한 정권의 민낯을 묘파한 '허상', 탈북자의 정체성 혼란을 형상화한 '혼동, 혼돈' 등이 대표작이다.
"'혼동, 혼돈'이라는 작품의 원제목은 '정체성의 혼돈'이었어요. 일종의 자화상이죠. 저희 같은 탈북자들이 한국 땅에 와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혼돈의 감정과 복잡한 시선들을 투영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겪은 삶의 이야기들을 많이 그려낼 겁니다. 제 이야기가 곧 탈북한 분들 모두의 이야기고, 북한 주민들의 이야기도 되니까요."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02/2018020201955.html

2018년 3월 17일 토요일

암을 이겨낸 220명의 건강 비법은?

습관이 건강을 만든다
암 생존율이 70%에 달할 만큼 암 치료 의술이 발달했지만, 암은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다. 최선을 다해 암을 이겨냈다 하더라도, 두려움은 다시 재발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진다. “암에 대한 두려움을 덜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서울대병원 암통합케어센터 윤영호 교수(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10년이 넘는 시간을 연구해왔다. 2004년부터 암 완치판정을 받은 지 5년 이상 된 암 생존자 4000여 명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중 220명의 답장을 모아 정리한 책이 ‘습관이 건강을 만든다’이다. 실제로 암을 이겨낸 220명은 어떤 건강 비법을 가지고 있었을까?
책, 습관이 건강을 만든다

암, 생존자에서 경험자로의 패러다임 전환

1990년만 하더라도 ‘암’은 불치의 병이었다. 암은 곧 죽음이었다. 하지만 암을 치료하는 의술의 발달은 눈부셨다. 1993년 41.7%에 불과하던 전체 암환자의 5년 생존율은 최근 62.2%까지 증가했다. 여성의 경우는 78.2%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암 자체는 위험하지만 생존이 불가능해 보이는 재난이나 전쟁과는 다르다는 의미에서 ‘암 생존자’를 ‘암 경험자’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다.
220명의 암 경험자가 보내 온 비슷한 답변그렇다면 70%의 암 경험자들은 어떻게 암을 이겨내고 있었을까. 윤영호 교수는 암 경험자들에게 “어떻게 해서 암을 이겨내고 건강을 되찾았는지” 알려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렇게 해서 받은 220장의 답장은, 함께 썼나 의심이 생길 정도로 비슷한 내용들이 많았다. 주요 내용은 다음의 10가지다.
▲긍정적인 마음 갖기 ▲적극적인 삶 살기 ▲규칙적으로 운동하기 ▲건강한 음식 바르게 먹기 ▲금연과 절주하기 ▲정기적으로 건강검진받기 ▲과로는 금물! 나에게 맞는 생활하기 ▲사람들에게 마음 베풀기 ▲종교 생활하기 

놀랍게도 이렇게 얻은 10가지 종류의 답변은, 윤 교수가 임상실험 등을 통해 얻은 암 생존율을 높이는 과학적 근거와도 일치했다.

암 경험자의 10가지 건강 비법은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전인적 건강(holistic health)’과도 일치했다. 전인적 건강의 조건에는 정신적·신체적·사회적·영적인 4가지 분야가 있는데, 10가지 건강 비법에는 이 4가지가 고루 섞여 있었다.
다시 한 번, 습관이 건강을 만든다
암 경험자의 10가지 지혜가 사실은 매우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당연한 것들이 실제 삶 속에서는 전혀 당연하지 않은 일일 사람이 많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습관이 건강을 만든다. 건강을 지켜낸 사람들의 실감나는 이야기들을 통해, 습관이 암보다 얼마나 더 무서운지 확인해보자. 암 경험자들의 10가지 건강 비법 중 5가지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을 알아봤다.

건강습관 1 긍정적인 생각“찬물을 마실 때마다 수술한 왼쪽 가슴이 시리고 아픈 통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문을 걸듯이 매일 나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어제의 나는 암환자였지만 오늘은 아니야!’ 우울한 마음을 털어버리면 몸도 가벼워지고 오늘을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 50세 성미숙 씨
긍정적인 생각은 강하다긍정적인 생각은 실제로 암환자의 생존율을 높인다. 세계폐암학회는 2010년 534명의 폐암 환자 중 암 진단을 받기 전 실시한 성격 검사에서 긍정적인 성격에 가깝던 환자가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생존 기간이 평균 6개월 길고, 5년 생존율도 약 12%나 높다고 발표했다.
어떻게,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까?
1. 희망 찾기
암에 걸렸다고 지금까지와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의학기술의 발달과 조기 진단 증가로 암 생존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불편함이야 있겠지만, 지금처럼 일상적인 일들을 계획하고 실천하면 삶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2. 감사하기
삶의 소중함과 재미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오늘 있었던 일, 향긋한 차 한 잔, 반려동물과의 산책, 따사로운 햇볕, 수다 등 행복한 경험을 떠올리면, 감사한 마음이 평안을 줌은 물론 실제 치유 효과를 높인다.

3. 적극적 자세 갖기
자기의 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을 ‘자기효능감’이라고 부른다. 자기효능감이 높은 사람은 문제가 있을때 계획을 짜고 그다음의 결과까지 넓게 보려고 한다. 이처럼 자신의 선택과 행동이 삶을 결정한다고 믿는다면 부정적인 생각도 의외로 쉽게 이겨낼 수 있다.

건강습관 2 적극적인 자세
“나는 내 일을 유지하는 것이 암을 이기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몰입할 수 있는 일과 좋은 동료가 있으면 암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좀 더 편안해질 수 있어요.” - 45세 호성영 씨

암 경험자가 전하는 적극적인 자세 갖는 법스스로 일궈낸 작은 성공이 적극적인 태도를 만들고, 암 치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50대 중반인 권유연 씨는 수술 후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함께 받았다. 그러는 동안 머리가 심하게 빠졌고, 여기에 상심해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권유연 씨는 이렇게 시작한 수면제 양을 처음에는 절반, 다음에는 완전히 끊으면서 성취감과 행복의 경험을 얻었다. 이는 암치료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냈다.
버킷리스트를 만들자적극적인 태도를 갖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버킷리스트 만들기다. 버킷리스트는 막연한 꿈이 아닌 실제로 ‘이룰 수도 있는’ 꿈으로 채운다. 버킷리스트의 가장 큰 효과는 앞으로 삶의 방향을 계획하는 데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고, 이를 통해 한층 적극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다.

건강습관 3 규칙적인 운동
“수술 한 달 뒤, 걷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20m로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매일 4~5km를 걷고 있습니다. 걸을 때의 상쾌한 기분이 좋아서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줬어요.” - 45세 주성영 씨
암 경험자, 신체활동 늘면 사망 위험 45% 줄어든다암 경험자 중 치료 후 운동을 하는 경우는 20~30%에 불과하다. 하지만 규칙적인 운동은 암환자의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유방암 경험자 933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암 진단 후 신체 활동량이 늘어난 사람의 사망 위험이 45% 낮아진 반면, 활동량이 줄어든 사람들의 사망 위험은 약 4배나 증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암종별 효과적인 운동은?
폐암
수술이나 방사선치료로 폐의 일부를 절제하는 등 호흡 곤란을 겪기 쉽다. 불안, 피로, 근력과 심폐 기능 저하 등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이때는 줄어든 폐 면적을 대신해 체내 환기가 가능하도록 호흡 운동과 스트레칭, 유산소운동을 병행하는 게 좋다. 복식호흡과 풍선 불기, 촛불 불기 같은 운동도 좋다.

대장암ㆍ직장암
이런 암의 주요 원인은 동물성 지방의 과도한 섭취와 칼슘이나 비타민D 부족이다. 따라서 매일 30분 이상 빠르게 걷거나 햇빛을 받으며 자전거를 타는 등 중강도 운동을 실시해야 한다.

전립선암
전립선암도 비만이 암 발생과 사망률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남성호르몬 억제 치료를 받게 되면서, 뼈의 강도가 약해지고 근육 양까지 줄 수 있다. 따라서 무거운 운동기구를 사용하는 헬스보다 맨손운동이나 탄력밴드를 이용한 가벼운 근력운동이 좋다. 

건강습관 4 올바른 식습관
“살가죽만 남은 상태에서 치료를 마쳤습니다. 살기 위해 철저하게 식이요법과 운동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살과 근육이 붙으면서 몸무게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건강해졌습니다. 지금은 날씬한 몸과 건강한 마음까지 갖춰 제2의 인생을 즐기려 합니다.”- 49세 양소운 씨
균형 잡힌 식사가 필요한 이유 6가지
영양 부족이나 과잉으로 생길 수 있는 건강상의 문제점을 막아준다. 실제로 지방이나 탄수화물의 과잉 섭취는 과체중과 비만을 야기하며, 비만은 재발이나 2차 암 발생 위험을 높이고, 생존율도 낮춘다.

2 건강 체중을 유지하게 한다. 건강 체중이란 암에 따른 사망률이 가장 낮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체중이다.

3 신체 리듬을 유지해준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 식사하게 되면서 신체 리듬을 유지할 수 있다.

4 더욱 활동적으로 적극적인 삶을 이끈다. 말하고 걷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등의 모든 활동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돕는 일련의 활동도 잘 먹어야 경험할 수 있다.

5 암 외에 다른 질병의 위험을 낮춘다. 균형 잡힌 식사는 당뇨병이나 고혈압, 소화기계질환 등 다른 질환의 발병 위험을 낮춘다. 동반 질환이 있으면 암환자의 생존율을 떨어뜨린다.

6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는 균형잡힌 식사가 암 환자와 경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이들은 신체적ㆍ정서적 기능이 우월할 정도로 높았고, 통증도 덜했다.

건강습관 5 금연과 절주
“20년 넘게 매일 술 마시고 담배를 피우다 위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제서야 후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수술 후 바로 금연과 금주를 시작했습니다. 의사와 함께 건강 계획을 세우고 운동을 하니 30대 시절로 돌아간것처럼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 54세 백형식 씨
금주와 금연을 동시에 해라암을 겪으면 금주나 금연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는 암을 겪은 경험자 중에서도 여전히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암의 생존율을 낮추고, 사망률을 높이는 최악의 습관이기 때문에 더 주의가 필요하다.
절제력을 높이는 6가지 방법
1 슬로푸드를 먹자 절제력을 발휘할 때 많이 쓰이는 영양소가 포도당이다. 채소나 견과류, 블루베리, 사과 등 서서히 소화돼 포도당이 한번에 많이 쓰이지 않는 식품을 먹는 게 좋다.

2 충분히 잠을 자자 피곤한 상태에서는 뇌세포에 에너지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아 포도당 활성화 과정을 방해받는다.

3 운동을 생활화하자 술과 담배를 끊어 생기는 일시적인 집중력 저하ㆍ무기력에 도움이 된다.

취미를 가지자 담배나 술을 안 하는 시간을 슬기롭게 보낼 수 있는 취미생활이 필요하다.

5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자 혼자만의 고요한 공간은 다양한 유혹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일기를 쓰자 절주나 금연을 하는 이유를 매일 적는 것도 의지력을 키워주는 데 도움이 된다.